친구와 술을 마시고 돌아오는 길에서 울고있는 아깽이를 만났다.
사람손을 탄 녀석이었는지 손을 내밀었더니 무서워하지 않고 오히려 손에 머리를 문지르며 비벼대는 애교를 부린다..
측은한 마음이 들어 집에 데려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결국 술김에 집으로 데리고 와버렸다..
집에 와서 내 방바닥에 놔주니.. 역시 예상대로 먼지 가득한 침대바닥으로 들어가버렸다. 안그래도 꼬질꼬질한데..
일단은 다 내팽겨치고 방 안에 발길 닿을만한 곳은 청소기로 다 밀고 마대걸레로 깨끗하게 박박 문질러 닦았다.
청소를 마치고.. 상자를 하나 주워와서 닦은 다음 급하게 사온 모레를 뿌려줬더니 관심을 보인다..
(상자가 냥이에 비해 너무 크고 높이가 낮아서 그런건지 모래가 사방으로 날려서 세숫대야에 모래를 옮겨주었다.)
물을 줬더니 허겁지겁 물을 먹기 시작한다. 이녀석 목이 많이 말랐나부다.. 물을 먼저 줬어야 했는데..ㅠㅠ
물을 먹고 좀 편안해진걸까.. 침대밑으로 다시 들어가지 않고 슬슬 방안을 둘러본다.
저쪽도 보고..
요쪽도 보고..
어슬렁거리기도 해보고..
비닐봉지에도 관심을 보이고..
여기저기 둘러보고는 내 앞에 잠시 자리잡고 앉더니..
부비부비하면서 시선은 나에게 집중..
너무 꼬질꼬질해서 물티슈로 닦아줬는데.. 새까맣게 때가 탄 발과 배는 아무리 닦아도 티가 안난다.
갓 업어온 녀석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물로 씻기면 안된다는걸 알고는 있었지만..
너무 지저분해서 물을 좀 뭍여서 씻겼다.
새끼냥이라 그런건지 얌전해서 그런건지.. 물을 뭍여도 막 도망가거나 피하려하지 않아서 어찌나 고맙던지..
헤어드라이기로 털을 말려주는데도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고 그루밍만 하고있다..
얼추 털이 다 마르고나니..
내려놓기를 반복해도 계속 내 무릎위로 올라오려고 바둥거리길래 하고싶은대로 두었더니
골골거리면서 내 무릎위에서 잠이 들었다.
(참고로 만져주거나 쓰다듬어주지 않아도 항시 골골거리는 소리를 낸다..)
정말 애교가 많은 녀석이다.
정리를 하느라 계속 방 이곳저곳을 왔다갔다 하는데 내 다리에 몸이 치이면서도 계속 옆에 딱 붙어서 졸졸졸 따라다니며 쉬지않고 부비부비..
잠깐이라도 놀아줄까 싶어서 뭐 없을까 찾던 차에 책상서랍에 짱박혀있던 운동화끈을 꺼내어 이리저리 흔들어대니 미친듯이 날뛴다.
쓰다듬어 주기라도 하면 발라당 뒤집어져서 발로 내손을 잡고 깨물려고 안간힘을 쓴다.
(나중에는 자려고 누워있는데도 내 손을 가만히 냅두지 않더라는... 덕분에 난 한숨도 못잤을 뿐이고..--;;)
퇴근하고 집에 오자마자 병원에 데리고가서 기본검진을 받았다.
속상하게도 장염을 진단받았다.. 그래도 다행인건 피부, 귀, 치아 등 다른 부위는 모두 아주 양호했다.
2~3개월 된 홀쭉한 여아이고, 몸무게는 730g이다..(사진은 동물병원에서 찍은 것임)
냥이에 대해 관심은 많았지만 같이 생활할만큼의 지식도 부족할 뿐더러..
집에는 이 아이가 당장 생활할 수 있는 환경이 안되어 있는데다가 아버지의 절대적인 반대를 이겨낼 수가 없었기에..
더 좋은 곳으로 입양을 보내는게 옳다고 생각을 했다..
선생님께 입양 서비스에 대한 문의를 했봤더니 강동구 유기동물 보호소에서 동물병원과 연계해서 입양을 해주는 서비스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우선 유기동물로 등록을 하고..
현재로서는 장염치료 문제도 있고 시설적인 부분을 생각하더라도 병원에서 지내는게 더 나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병원에 맡기기로 했다.
입양이 안되면 나중에 안락사를 시킬 수도 있다는 말을 들어서 그 부분에 대해서도 물어보니..
입양은 거의 다 되는데다가 새끼일 경우엔 입양확률이 거의 100%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제발 좋은 곳으로 갈 수 있도록 꼭 좀 잘 부탁드린다는 말과 함께..
만에 하나 입양이 안되면 다시 데리고오는 한이 있더라도 안락사는 절대 안되니 필히 연락을 달라고 신신당부를 하고 동물병원을 나왔다..
집에와서 온통 모래천지인 방을 싹 정리하고 나니 자꾸 이 녀석의 골골거리는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욕심때문에 데리고 왔던게 정말 멍청스럽다는 생각이 들며 괜히 데리고왔나 싶다가도..
길에 그냥 내버려두었으면.. 아직 어린애인데 발정기라도 와서 새끼까지 낳게 된다면 더 고생이지 않았을까..
어쨌든.. 장염도 치료할 수 있게 됐고, 더 좋은 곳에서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는 기회가 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스스로 위안해본다..
이 애교많은 지지배야.. 치료 잘 받고.. 부디 더 좋은 집사 만나서 사랑받으면서 아프지않고 건강하게 살아야한다..
꼭 그렇게 되어주기를..
'일상 > 잡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주말 오후의 라이딩(저질화질의 폰카) (2) | 2010.08.22 |
---|